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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시대

나카마 시 지역은 비옥한 온가 평야에 위치하고 있는 점에서 고대부터 벼농사가 활발히 행해졌으며, 야요이 시대의 농경문화 전래의 지표가 된 [온가강식 토기] 등 농경문화를 전하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고분시대 후기(5세기말~6세기 후반)에는 현재의 하부 공원에 있는 하부 구릉 주변에 횡혈식 군집묘가 다수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부라칸 백혈]이라 불리고 현 지정문화재로 되어 있습니다.

 
하부라칸 백혈(Habu Rakan Hyakketsu tomb) 미야다산 횡혈묘군 세토 횡혈묘군 나카마 중학교 횡혈묘군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 시대(15세기-18세기)

무로마치 시대에는 (현재의 아시야초 야마가를 거점으로 하여, 야하타 서구와 온가군, 나카마 시, 노가타 시 등에 영토를 소유하는)아소 씨와 (현재의 무나카타 시를 거점으로 하여, 온가강 서부에 세력을 확장한)무나가타 씨의 양쪽이 서로 대립하며 여러 차례 전투를 하였으나, 결과가 나지 않아 강 서쪽을 무나카타 영토, 강 동쪽을 아소 영토로 분할 한 것이 고문서에 적혀 있습니다. 에도 시대(18세기)에는 후쿠오카 번의 소유 영토가 되었습니다. 온가강의 거듭되는 범람을 막기 위하여 온가강 제방의 보수와 호리카와의 굴삭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메이지에서 쇼와 초기(19-20세기)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석탄이 나라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탄광 마을로서 지쿠호 탄전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석탄 수송에는 당초, [가와히라타]라고 불리는 배가 온가강와 호리카와를 왕래하였지만, 1891년에 지쿠호 본선, 1912년에 가쓰키센이 개통되자 철도의 대량 수송에 밀려, 가와히라타는 서서히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인구도 계속 증가하여 메이지 말기(1900년대 초반) 4,800명에서 1959년에는 46,000명까지 되었습니다.


석탄으로 발전하고, 석탄과 함께 걸어온 나카마의 역사.

메이지 시대(19세기)에 지쿠호 지역의 석탄산업은 크게 발전하고, 그에 동반하여 나카마 시도 급격하게 발전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전후의 에너지 혁명에 의해 점차적으로 석탄산업이 쇠퇴하자, 나카마 시내의 탄광도 점차 폐쇄하여 갑니다. 현재는 석탄과 탄광의 자취는 조금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호리카와 JR지쿠호 본선 교각 석탄 노두 나카쓰루 탄광 시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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